공간소개
하늘물터 아래의 낭만
세종 때 정승 유관은 검소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3대에 걸쳐 임금을 모셨던 정승이지만 살던 집에는 비 오는 날 비가 새 우산을 펴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비우당(庇雨堂)이란 이름이 붙었다. 비우당의 정신은 외증손 이희검과‘지봉유설’(芝峰類說)을 쓴 이수광에게까지 대를 이었다. 비우당교는 인근에 비우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우당교를 지나 무학교로 향할 때면 머리 위로 비가 내린다. 마치 비우당 아래 있는 듯하다. 총 42개의 노즐이 50m 가까이 이어지는 터널분수다. 하늘물터라고도 불리는데 존치규각과 더불어 청계7경이다. 5m 높이의 석축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물줄기는 머리 위 한참 높은 곳을 지나 곧장 하천으로 떨어진다. 석축에서 물이 떨어지는 곳까지의 분사 거리는 16m에 달한다. 터널 밑을 지날 때는 물방울이 흩날린다. 하지만 심하게 젖을 정도는 아니다. 여름에 지나면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터널분수의 매력은 단순히 터널을 이루는 데 멈추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기기가 어우러져 색색의 물빛터널을 만든다. 어느 순간은 붉었다가 파란색으로 또 초록색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낭만 어린 청계 비경이 실감난다.
오래 전 청계천의 땀방울
터널분수에 넋을 잃고 지나 다시 앞을 바라보면 뜻밖에도 거대한 3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있다. 'T'와 'I'의 형상을 한 그것들은 청계천 한가운데 우뚝 솟았다. 자칫 공사 중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청계천의 역사를 나타내는 유물로 청계 고가도로의 교각을 이루던 존치교각이다.
1971년 완공한 청계 고가도로는 서울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5.65km의 4차선 도로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도로로 1970~80년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고가도로 아래는 세운상가, 동대문시장, 황학동 벼룩시장 등이 자리해 서울의 또 다른 문화를 형성했었다. 청계 고가도로는 지난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사업 계획에 따라 철거에 들어갔다.
존치교각은 청계 고가도로를 받치던 교각으로 상판을 뜯어내고 남은 부분이다. 'T'자형의 교각 2개와 그보다 작은 'I'형의 교각 1개가 남았다. 청계천의 역사성이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윗세대에게 받치는 존경의 표시며, 그네들의 땀방울이다. 그렇기에 청계천 최고의 풍경으로 존치교각을 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청계천의 막바지에서 만나게 되는 의미 있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