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소개
대각사는 1911년 용성 스님(1864~1940)이 창건한 절이다. 용성 스님은 3. 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자주성을 확립하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한국 근대 불교 혁신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현재의 대각사는 1986년에 기존에 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다. 3층으로 된 대각성전은 전통적인 목조건축의 외관을 수용한 현대식 전각으로 훗날 증축이 가능하도록 기초와 골격을 튼튼히 하였다고 한다.
도심 속에 위치한 근대 한국 불교의 산실 대각사(大覺寺)는 높은 빌딩들 뒤편 한옥 골목 사이에 있다. 산 중에 있는 다른 절처럼 터가 넓지도 않고, 빼어나게 아름답지도 않지만, 한국 근대 불교의 산실 역할을 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사찰이다.
조선시대까지 불교는 억압의 대상이었다. 300년간 승려의 도성 출입은 금지되다가 1895년이 되어서야 해제되었다. 조선 시대 크게 위축되었던 불교는 일제 강점기에는 세속화되면서 변질되었다. 스님이 결혼을 하고 고기를 먹었다. 용성 스님은 왜색화 된 불교를 정화하고자 노력했다. 불상이 아닌 깨달음을 추구하는 대각교(大覺敎)를 세우며, 산사에 갇혀 있던 깨달음을 도심 속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던 불교 경전을 쉬운 한글로 번역하고 찬불가를 직접 작사하며 대중화에 힘썼다.
용성 스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주 용정에 ‘대각교당’을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해방 5년 전 독립을 보지 못하고 결국 입적하고 말았지만, 그의 뜻을 이어 받은 제자들이 대각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대각회(大覺會)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층 한옥에서 시작했던 대각사는 1986년 경내에 있던 모든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다. 일주문, 범종각, 그리고 3층 높이의 대각성전(大覺聖殿)이 세워졌다. 대각성전 1층에는 큰 법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용성 스님의 사상을 배우는 ‘대각사 선(禪) 불교대학’의 강의와 참선이 주로 열리는 곳이다.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묵상하기 대각성전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면 왼편에 사무실이 있고 정면에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봉환재(鳳還齋)가 있다. 이곳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한 층을 더 올라가 3층 법당으로 향한다. 법당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는다. 법당에 앉을 때 사용하는 방석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삼존불이 있고 천장에는 연등이 가득하다. 한 켠에는 용성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참선이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법당 한 쪽에 자리잡고 앉아 묵상을 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도 좋겠다.